정직한 제목 정직한 내용
주제는 "귀여워하다"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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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까 등굣길에 교문에서 마주쳤을 때부터 방음연습실에 도착해 지금에 이르기까지 키류도 나도, 서로 입을 열지 않고 있다. 이 황당한 상황에 무슨 말을 해야 하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그건 키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쪽 벽면에 붙은 거울을 계속 들여다보며 믿기지 않는 듯 머리를 매만지는 그를 보며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조금 있으면 아침 연습 시간이고, 곧 칸자키도 올 것이다. 나도 믿기지 않는데 칸자키에겐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칸자키 소마, 도착하였소! 하스미 공, 키류 공, 기다리게 하여 송구하……!”
활기차게 문을 열고 들어오던 칸자키가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시선은 키류에게 머물러 있다. 눈동자를 위아래로 움직이던 녀석이 번개같이 칼을 뽑았다. 역시,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군.
“네놈, 키류 공으로 둔갑한 늑대렷다! 하스미 공, 저 놈에게서 멀리 떨어지시오! 저 축생이 하스미 공을 해할 수도 있소이다!”
“칼을 거둬라, 칸자키. 놀란 건 알지만 저 녀석은 키류가 맞다.”
“하지만……!”
“그래, 자고 일어나니 뭔가 이상한 게 달리긴 했지만, 알맹이는 변함없이 키류 쿠로가 맞다고. 근데 축생이라니 말이 좀 심한 거 아냐?”
그렇다, 지금 키류에겐 머리에 늑대의 귀가, 엉덩이에는 늑대의 꼬리가 달려 있다.
- - -
우여곡절 끝에 아침 연습이 끝났다. 귀와 꼬리가 달렸을 뿐이지 연습에는 그다지 문제가 없었다. 꼬리 때문에 바지가 약간 내려가 있어 스텝이 엉거주춤하긴 하지만, 어차피 오늘 연습은 상체 동작 위주의 연습이어서 괜찮았다. 뒷정리를 끝낸 후 칸자키를 먼저 교실로 보내고, 거울 앞에서 서성이는 키류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어떻게 해야 좋을까?”
“그걸 나한테 물어봐도……”
“나리는 나랑 다르게 머리가 좋으니까, 얼른 머리를 굴려봐.”
나라고 이런 기상천외한 사태에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이 제꺽 떠오를 리가 있겠나. 교문을 통과할 때처럼 긴 잠바를 입은 채로 지내야 하나. 교문 근처에서 긴 잠바를 입고 후드까지 뒤집어쓴 채 서성이고 있는 키류를 발견했던 나는, 교문 앞에 서 있는 교사에게 그가 심한 감기에 걸려서 외투를 입을 수밖에 없다고 대충 사정을 꾸며내어 둘러댄 후 잠바를 입은 그와 함께 교문을 통과했다. 그 때는 그 변명이 그럭저럭 먹혀들었지만, 교사한테 지적을 받을 수도 있다. 애초에 길고 두꺼운 잠바를 입고 있는 건 너무 더워서 키류에게 가혹한 일일 것이다. 그렇다고 저 귀와 꼬리를 드러낸 채로 지내는 것 또한 다른 방면으로 키류에게 가혹한 일이겠지.
“하스미, 너무 뚫어져라 보는 것 같은데.”
“아, 그랬나. 미안하다.”
나도 모르게 그의 쫑긋거리는 늑대 귀를 쳐다보고 있었다. 실례가 되는 행동을 했군.
“아침에 일어나니 갑자기 그런 것들이 달려 있었다고 했나?”
“응, 전혀 몰랐는데 거실에 나가니 먼저 일어나서 TV를 보고 있던 내 동생이 화들짝 놀라면서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알았어. 야구방망이를 들고 경계하는데, 나라는 걸 증명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
“네놈의 여동생도 한 성깔 하는군. 어제 잠들 때까진 확실히 달려 있지 않았나? 그런 것이 생겨날 징후 같은 건 없었나? 꿈을 꿨다던가 하는 거 말이다.”
“어제 밤엔 확실히 안 달려 있었어. 그건 동생이 증명해줄 수 있거든. 꿈도 딱히 나리가 나왔다는 것 말곤…….”
녀석이 말끝을 흐렸다. 꼬리가 살랑거리는 걸 보니 부끄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나왔다고? 뭐, 나도 가끔 꿈에 키류가 나오니 이상한 일은 아니다만.
“내용은?”
“기억이 잘 안 나. 그보다 하스미.”
“음?”
“내 꼬리가 그렇게 신기해?”
“아, 아니, 딱히…….”
“꼬리가 움직이는 걸 계속 보고 있는데도?”
“으음, 흠, 흠……, 미안하다. 실례를 범했군. ……음?”
녀석이 갑자기 내 손목을 쥐었다. 그리고 자신의 꼬리로 가져갔다.
“키류……!”
“궁금하면 마음껏 만져도 돼. 너니까, 너한테만 허락하는 거야.”
갈색 털이 풍성한 꼬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폭신하고 부드럽다. 움찔거리며 움직이는 걸 보니 정말 키류에게 달린 게 맞나보다. 이것 때문에 교복 자켓은 약간 들려 있고, 바지는 약간 내려가 있는 상태다. 확실히 이런 모습을 다른 놈들에게 보이고 다닐 수는 없다.
“하, 하스미. 내가 마음껏 만져도 된다고 하긴 했지만, 꼬리로도 감촉은 느낄 수 있는데…….”
“그, 그랬지. 미안하다. 실수 연발이군. 구제 불능이다.”
“하하하, 나리는 상정 외의 돌발사태엔 약하니까.”
그가 얼굴이 빨개진 채로 웃었다. 네놈은 지금 태평하게 웃음이 나오는 거냐. 아니면 여유로운 척 하는 건가.
“양호실로 가자, 너희 반에게는 내가 잘 말해놓을 테니까, 일단 거기에 피신해 있자고.”
“그래, 그게 제일 나은 방법일 것 같네.”
나는 그가 긴 잠바를 입는 것을 지켜보았다. 시계를 보니 조금 있으면 수업 시작 시간이다. 연습이 끝나면 학생회에 잠깐 들렀다가 가려고 했는데, 이 녀석을 양호실에 데려다 주고 곧장 교실로 가야겠군.
- - -
혹시 키류의 상태가 나아졌는지 보려고 쉬는 시간을 이용해 보건실에 다녀온 내게 에이치가 말을 걸었다.
“오늘은 왠지 바빠 보이네, 케이토.”
“그래 보이면 좀 거들지 않겠나?”
“애초에 무리하지 말라고 잔소리를 하는 건 케이토였잖아? 후후. 그랬으면서 도움을 청하다니, 그만큼 정신이 없다는 뜻이겠지. 무슨 일 있니? 쉬는 시간마다 급히 뛰쳐나가는데.”
“별 일 없다. 학생회 일에나 신경써라, 에이치.”
키류에게 일어난 일을 이 녀석이 알면 큰일이다. 이 녀석에게서 홍차부로, 학생회로, 그리고 히비키 녀석에게 알려지는 건 시간문제다. 대충 둘러대는 수밖에 없다. 신경 끄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책상 주변을 맴돌던 녀석이 교과서를 가리켰다.
“봐, 케이토. 너 정말 무슨 일 있는 거 맞잖아. 오늘 전혀 수업에 집중 못하고 이런 거나 그리고 있고.”
“이, 이건……!”
당황해서 교과서를 황급히 덮었다. 키류가 자꾸만 신경 쓰여서 수업에 전혀 집중을 하지 못했고, 교과서 귀퉁이에 낙서도 해 버렸다. 그걸 또 귀신같이 발견했군, 에이치 녀석은.
“우후후, 잘 그렸는데 왜 숨기니? 키류 군이었지? 늑대 귀를 달고 있던데, 혹시 다음 컨셉?”
“그래, 다음 컨셉이다. 더 이상 기밀을 유출하고 싶지 않으니 그만 물어봐.”
“응, 그럴게. 그러고 보니 키류 군이 많이 아프다던데, 너는 키류 군을 걱정하고 있는 거겠지? 후후후. 이번 시간만 끝나면 점심시간이네. 점심 맛있게 먹어, 케이토. 거르지 말고. 네 말대로 오늘은 학생회실에 좀 가 볼까나. 네 부탁인데 거절할 수는 없잖니.”
조금 불안했지만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다. 녀석이 의미심장하게 웃는 게 조금 마음에 걸리지만, 별 일 없겠지.
- - -
매점에서 빵과 우유를 사서 양호실로 향했다. 사가미 선생님도 점심을 먹느라 자리를 비워 조용한 양호실 구석에 커튼을 친 채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있는 키류를 조심스레 불렀다. 앓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그의 부스스한 얼굴을 보니 잠들었던 것 같다.
“키류, 점심이다.”
“으, 벌써……. 수업 안 듣고 푹 자니까 좋구만.”
“네놈, 수업은 좀 제대로 들어라.”
“예예, 그렇게 합죠.”
건성으로 대답하고 빵을 한 입 베어 먹는 그를 보며 나도 그와 나란히 앉아 빵 봉지를 뜯었다.
“미안, 나 때문에 나리도 제대로 못 먹고.”
“그렇게 말하지 마라, 키류.”
“꼬리 만지러 오는 거라고 생각하지 뭐. 매번 와서 꼬리를 만지작거리고 있잖아.”
“……!”
아, 나도 모르게 또 녀석의 꼬리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화들짝 놀라 손을 떼려는 걸 그가 잡아 눌렀다. 계속 만져도 된다는 그의 말에 나는 사양하지 않고 그의 꼬리를 쓰다듬었다. 흠, 부드러운 느낌이 좋아서 자꾸 만지게 된다.
“그건 그렇고 어제 꿈 꿨던 게 어슴푸레하게 생각났는데…….”
“무슨 내용이었지? 분명히 내가 나왔다고 했지.”
“응. 그런데 그게…….”
조금 머뭇거리던 그가 내 귓가에 바싹 다가왔다.
“하스미, 내가 너를…….”
“음? 얼버무리지 말고 제대로 말해. 내가 아무리 귀가 좋아도 그렇게 말하는 건 못 알아듣는다.”
“그…… 있잖아. 우리…… 안 한지 제법 됐지?”
“아…….”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게 느껴진다. 그랬지, 최근에 많이 바빠서 단둘이 있을 시간도 없었고, 가벼운 스킨십조차 할 시간이 없었지.
“그런 꿈을 꿨어. 내가 너를 엉망진창으로 마구……”
“거, 거기까지만 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있다.”
설마 그래서 생긴 건가. 욕구 불만이 늑대의 귀와 꼬리라는 형태로 표출되었단 건가. 그렇다면 이 귀와 꼬리가 사라지기 위해서는 키류의 욕구가 해소되어야 하나…….
“하스미? 뭘 그렇게 멀뚱멀뚱 보고 있…… 읍!”
- - -
“야아, 케이토. 입가에 상처가 났네?”
“점심 먹다가 잘못 씹었다.”
“어떻게 씹으면 거기에 상처가 나는 거야? 아무튼 정말 케이토답지 않은 실수네. 그 정도로 걱정을 하고 있는 걸까나.”
……무모한 돌진이었다. 설마 송곳니마저 늑대의 것으로 바뀌었을 줄이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키스 도중에 송곳니 때문에 대참사를 당한 직후 키류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입술이 터져 피가 흐르는 나를 보고 당황한 그가 허둥지둥하다가 다시 입을 맞췄고, 입술을 마구 핥고 빨아올렸다. 어찌나 격렬했는지 하마터면 정신이 나갈 뻔했다. 덕분에 송곳니는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몇 번 더 키스하면 귀와 꼬리도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부리나케 보건실로 향했다.
“입술은 좀 괜찮아?”
“응. 그보다…… 꼬리가 없어졌군?”
“어, 으응. 한숨 자고 일어나니까 없어졌더라. 좀 아쉽지?”
“그다지 아쉽지 않다. 얼른 없어져야 네놈도 교실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
꼬리가 살랑거리는 녀석이 조금 귀여웠기 때문에 꼬리가 없어진 게 아쉽긴 하지만,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위해서는 빨리 없어지는 게 맞다.
“나는 좀 아쉽네, 귀여워하면서 열심히 만지는 나리 모습이 꽤 귀여웠거든.”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그리고 그렇게 만져주는 게 좋았어. 조금 야릇한 게 흥분되기도 했고. 그런 손길 오랜만이었잖아. 이게 없어져버리면 언제 또 나를 그렇게 만져줄까 싶기도 하고…… 하, 하스미? 여기 양호실…… 큿!”
야릇한 감정을 느끼면 귀마저 없어지는 건가? 두고두고 감상하고 싶을 정도로 귀엽지만, 키류와 홍월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나는 교복 안주머니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던 것을 꺼내어 포장을 뜯고 입에 물었다. 그리고 녀석의 다리 사이에 머리를 가져갔다.
“없어지기 전에 묻겠다, 키류.”
“응?”
“귀…… 어느 쪽으로 들리는 거지?”
“그, 글쎄?”
- - -
결국 오후 수업까지 모두 끝나고 부활동 시간이 되었다. 가라테부에 녀석은 오늘 참석하지 못한다고 말한 뒤 헐레벌떡 보건실로 달려왔다. 키류는 침대를 정돈하고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그의 머리에 달려 있던 늑대 귀는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군, 귀가 없어져서.”
“그래, 참 고맙네. 덕분에 양호선생한테 보건실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의심받을 뻔 했다고.”
“그 점에 대해서는 좀 미안하군. 도구를 썼으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어쨌든 오늘은 집에 일찍 가라, 키류. 가라테부에는 내가 잘 말해뒀으니까.”
“으음…… 근데 하스미.”
“왜?”
나란히 걷던 그가 걸음을 멈추고 우물쭈물했다.
“나 아직 늑대로 남은 부위가 있는데.”
“음? 겉으로 보기엔 아무 이상 없어 보이는데.”
“아까 그때…… 못 느꼈어?”
그의 얼굴이 빨개졌다. 아까 그때…… 라면, 확실히 다른 때보다 좀 버겁긴 했지. 적당히 돌려 말하려는 순간 그가 내 팔을 잡아 자기 쪽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나, 오늘 거기까지 사람으로 되돌리고 싶은데.”
“그, 그게 무슨……!”
“오늘 네가 나를 계속 귀여워해줬으니 이제는 내가 귀여워해줄 차례인 것 같아서. 뭐, 오늘 하루 너는 충분히 귀여웠지만 말야.”
귓가에 대고 나지막이 웃는 그의 목소리에 몸이 전율한다. 그렇게 혼을 쏙 빼놓고는 무작정 나를 잡아끈다.
“잠깐, 잠깐만 키류! 어디로 가는 건데!”
“겉모습만 늑대였던 게 아니란 걸 알려주려고.”
끝
뇌를 거치지 않고 손가락이 움직이는 대로 쓴 것 같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야..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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