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류가 큰 소리로 깨우는 통에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켰다. 새벽 늦게까지 깨어 있던 터라, 오늘은 아침 산책도 못하고 키류가 일어나 아침 식사 준비를 마친 이 시간까지 자고 있었다. 내가 일어나서 방 밖으로 나갈 때까지 그가 문 앞에 버티고 서 있을 것 같아서, 나는 안경을 쓰고 기지개를 켜며 침대 밖으로 내려왔다.
“또 늦게까지 안 잔 거야?”
“……그렇게 됐다.”
“좀 제대로 자라고. 아무리 네게 천사의 피가 섞였다고 해도, 인간의 몸이잖아. 몸을 혹사시키지 마. 현자라는 칭호를 가진 양반이, 자기 몸 관리하는 덴 현명하지 못해갖곤…….”
나랑 같이 살더니 잔소리가 많이 늘었군. 어린 늑대의 모습으로 쓰러져 있는 그를 데려와서 인간화 시켰을 땐 사람의 말을 할 줄 몰라서 가르쳐야 했는데, 이제는 감히 내게 잔소리를 한다. 그동안 들었던 만큼 돌려주겠다는 건가, 설마. 식탁 앞에 앉을 때까지 녀석의 잔소리는 계속됐다.
“그리고 피곤하다 싶으면 침대에 가서 자. 아무데서나 자면 내가 침대까지 날라다 줄 수가 없잖아, 결계 때문에.”
녀석이 못마땅한 듯 툴툴거렸다. 그가 방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문 앞에 서서 고래고래 소리만 지르고 있던 것은, 내가 방 입구에 결계를 쳐 놨기 때문이다. 녀석을 믿지 못해서, 목숨이 위험할까봐 그런 것은 아니다. 다른 의미로 나의 무언가가 위험할 것 같아서 그런 것이다.
“누구의 무엇 때문에 내가 결계를 쳤을지 잘 생각해 봐라, 키류.”
머리 위에 달린 늑대의 귀가 축 처진 채로, 그가 대답하지 않고 식사를 했다. 틈만 나면 침대로 기어들려고 했던 것이 잘못이라는 건 알고 있나보군. 내가 녀석에게 인간화 주문을 쓴 이후에는 거의 인간의 모습으로 살았기 때문인지, 녀석은 인간처럼 사고하고 생활했다. 물론 가끔 늑대의 본능을 표출하긴 하지만 말이지.
식사가 끝나고 나는 곧장 연구실로 향하고, 그는 텃밭과 정원을 살피러 갔다. 이 집은 마을과는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으며, 넓은 정원을 가지고 있다. 특별한 일이 없는 날이면 그는 지금처럼 정원을 돌고 텃밭을 가꾸고, 나는 책을 읽거나 연구실에서 연구를 한다. 진행 중인 연구가 두 개인데, 한 개는 내 몸을 가지고 하고 있다. 신체 변화에 대해 연구 일지를 작성하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키류가 들개와 노는 게 보인다. 저 개는 요 근래에 곧잘 보이던 그 녀석인 것 같군. 저런 모습을 보면 그가 원래는 늑대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때 늑대의 모습으로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게 나았을까.’
2년 전 봄, 나는 중상을 입은 채로 집 앞에 쓰러져 있던 녀석을 데려다 치료했다. 돌아갈 곳도 없어 보이고, 녀석도 나를 잘 따르기에 그를 인간의 모습으로 만들어 주고, 인간처럼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것부터가 잘못된 판단이었을까. 늑대는 늑대답게 살도록, 상처만 치료해서 돌려보내는 것이 옳았을까. 녀석이 인간의 모습으로 같이 살게 되면서, 외로움이 없어진 만큼 고민이 늘었다.
“하스미~ 점심 먹자.”
녀석이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크게 내 이름을 불렀다. 벌써 점심 먹을 시간인가. 부엌으로 향하니, 그새 웃통을 벗은 녀석이 땀에 젖은 채 꼬리를 살랑거리며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움직일 때마다 등 근육이 꿈틀거린다.
“왔어? 자리에 앉아.”
땀을 줄줄 흘리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얼마 전까지도 앳된 모습이 남아 있었는데, 한 달 전 늑대 모습이 되었다가 다시 인간화를 시키자 지금처럼 늠름한 모습으로 변했다. 인간화 주문은 완벽하지 않아서 일 년에 세 번 정도는 주문이 풀려 늑대의 모습으로 변한다. 다시 인간화 주문을 걸 때마다 그의 모습은 눈에 띄게 변했다. 처음 인간화를 시켰을 땐 완전히 꼬맹이였는데 말이지. 그래서 걱정이 된다. 늑대의 수명은 길지 않으니까……
“그래, 난 커튼 다 치고 집 안에 숨어 있을래. 보름달을 보면 너무 불끈불끈해서 기분이 이상하거든.”
그가 귀를 쫑긋거리고 어깨를 으쓱했다. 땀이 가슴 근육 사이로 흘러내리는 것을 멍하니 지켜보다가 그가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녀석은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하스미, 결계 말인데…….”
“안 돼.”
“칫, 매정하구만.”
쫑긋 서 있던 녀석의 귀가 금세 축 처졌다. 더 이상 상대하고 있다간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아서, 그가 뜯어놓은 약초를 가지고 도망치듯 연구실로 돌아왔다. 녀석에게 몸을 내어줄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조금만 기다려줘, 키류. 지금 이 연구들이 끝나면 네가 원하는 대로 해 줄테니. 다 네놈을 위한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연구들은.
“윽!”
마실 약을 끓이던 병이 펑 터져버렸다. 다른 생각을 하다가 불을 끄는 타이밍을 놓쳤군. 소리에 놀랐는지 녀석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눈이 동그래진 채 병의 조각을 줍는 녀석이 보지 못하도록 연구 과제의 제목이 쓰인 노트를 숨겼다. 무엇을 연구하고 있는지 알면, 녀석은 분명히 걱정을 할 것이다.
“위험한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니지, 나리?”
“그건 네가 상관할 문제가 아니다.”
“왜 상관이 없는데?”
걸레로 물약을 닦던 그가 꼬리를 세우며 발끈했다.
“난 너랑 살고 있잖아. 그리고 넌 내게 생명의 은인이야. 그런 네가 죽으면 나는……”
“내 걱정을 하기 전에 네놈 자신의 걱정을 하도록 해, 키류. 네놈이 했던 말대로 나는 천사의 피가 섞였지만 인간이지. 하지만 네놈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늑대다. 인간화는 되어 있지만, 기본적으로 네놈은 늑대다. 그렇기에 네놈도 늑대의 수명을 따라간다는 것이다. 인간화가 풀려 다시 주문을 걸 때마다 네놈의 몸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는 네놈이 더 잘 알고 있겠지.”
“…….”
내가 하려는 말을 이해했는지, 그는 인상을 쓴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병이 깨졌던 흔적을 수습하고 연구실을 나갈 때까지 입을 닫고 있던 그의 모습은 조금 의기소침해 보였다. 숨겼던 연구 노트를 다시 꺼내었다. 그동안 기록해온 것들을 보다가, 마음이 답답해져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네놈도 답답할 것이다. 하지만, 네놈이 이렇게 살아가도록 만든 내게도 책임이 있다. 그 책임을 다하려는 것을, 조금은 이해해 줬으면 좋겠는데…….
* * *
저녁 식사까지도 녀석은 마음이 풀리지 않은 것 같았다. 꽁해 있는 채로 한 마디 말도 없이 식사를 마치는 녀석을 두고, 나는 온 집안에 두꺼운 커튼을 쳤다. 보름달은 인간화 마법에도 어느 정도 간섭을 하는지, 녀석은 달빛을 쬐면 이상하리만큼 힘이 솟는다고 했다. 녀석의 표현을 빌리자면 불끈불끈한다기에, 내게도 영향이 있을 것 같아서 조심하자고 생각했다.
커튼을 친 뒤에 곧장 산책을 나섰다. 아까 물약을 못 만들었기에, 다시 물약을 만들 약초를 뜯을 겸 정원을 한 바퀴 돌았다. 붉은 꽃이 달빛에 반짝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 꽃이 이렇게 핀 지 곧 일 년이 된다. 수명을 늘리는 물약을 연구하여 먹이고 있는 꽃이다. 조금 더 상태를 지켜보다가, 생각한 기간만큼 이 꽃이 살아 있다면 그 물약을 나도 직접 먹을 것이다. 동물에게 먹이는 것보다 그러는 편이 더 빠르다.
아침에 키류가 말한 대로 내 몸에는 천사의 피가 흐르고 있다. 인간 세상의 연구를 하고 싶어서 하늘에서 내려오면서, 날개를 떼고 인간의 몸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인간들보다 회복 속도가 빠르고 독에 내성도 강하며, 수명도 길다. 원하는 만큼 연구를 하다가, 수명을 다하거나 만족스러울 때 다시 천계로 돌아가면 된다.
‘그러면 되는 것이었는데…….’
왕궁이나 마법 학교에 가끔 가서 지식을 전달하면서도 아무에게도 정을 준 일이 없었는데, 이 세상에 미련이 생겨버렸다. 수명의 연장이란, 하늘의 뜻에 거역하는 연구다. 주어진 수명을 거역하고 운명을 바꾸는 주문이란 천계에서 용납하지 않는 금기. 자칫했다간 다시 천계로 돌아가지 못하고 지옥에 떨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연구를 해서라도 잃고 싶지 않은 것이 생기고 만 것이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생각에 잠긴 채 정원을 걷다보니, 어느 새 토끼장 앞까지 와 있었다. 먹이를 잘 안 먹는다고 키류가 그랬던가. 아직도 먹이통에 남아 있는 먹이를 들고 토끼에게 디밀어보았다.
“아야!”
먹이를 뜯는가 싶던 녀석이 내 손가락을 물어뜯었다. 배은망덕한 놈이군, 주인의 손가락을 물다니. 이 녀석을 내일 아침으로 삼을까. ……농담이다. 손가락을 말아 주먹을 쥔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녀석은 책을 읽고 있었다.
“네놈이 웬일로 책을 읽고 있지?”
“나리한테 잔소리를 하기 위해 식견을 늘리고 있는 중이지.”
“흥, 어쨌든 배움이란 좋은 것이다. 산책을 하고 왔더니 덥군. 난 씻겠다.”
“잠깐만, 하스미.”
욕실로 향하려는 나를 녀석이 불렀다.
“그쪽 손, 숨기고 있는 것 같은데.”
“별 거 아니다.”
녀석이 붙잡기 전에 얼른 욕실로 도망쳤다. 토끼에게 물린 상처에서 아직도 피가 멈추지 않고 있다. 실험해볼 것이 있어 지혈을 늦추는 주문을 스스로에게 걸어놨던 것을 잊고 있었다. 목욕통에 물을 받고 몸을 담글 때까지도 피는 멈추지 않았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욕실 문이 열리고, 옷을 벗은 녀석이 들어왔다. 다짜고짜 목욕통 안으로 들어온 녀석이 내 손을 잡아챘다.
“거봐, 다쳤잖아.”
“…….”
“네 말대로 난 늑대야. 피 냄새가 나는 걸 내게 숨길 수 있을 것 같았어?”
피가 나는 손가락을 입에 가져간 그가 상처부위를 빨고 손가락을 핥았다. 녹색 눈이 나를 똑바로 보고 있다. 손가락 사이를 간질이는 감촉에 몸이 움찔거렸다. 손바닥의 손금을 따라 혀끝으로 핥은 그가 손목 안쪽을 살짝 물었다.
“너 또 몸에다 이상한 짓 해 놨지?”
“…….”
내가 부정하지 않자 녀석이 물 위로 나와 있는 내 가슴을 꾹 눌렀다.
“읏……!”
그가 손을 뗀 곳에서 하얀 액체가 흘러내려 목욕물에 섞였다. 녀석이 자신의 손끝에 묻은 것을 핥았다.
“어떻게 알았지?”
“언젠가부터 젖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네가 무슨 짓을 하는지 조금 알아봤지.”
“쓸데없는 짓을 했군.”
“내가 너한테 할 말이야, 하스미.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건데?”
“다 네놈을 위해서다.”
“나를 위해서라고?”
녀석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런 배려 같지 않은 배려, 전혀 필요 없어. 나는 암컷이 필요한 게 아냐. 번식을 하겠다는 뜻이 아니라고. 굳이 네 몸을 변화시키지 않아도 돼.”
“키류, 내 설명을 들어……!”
녀석이 내 몸을 당겨 안으며 내게 입술을 포갰다. 밀어내야 하는데, 힘에 밀려 꼼짝할 수가 없다. 보름달 때문에 힘이 넘치는 건가. 송곳니 때문에 가끔 움찔거리며, 녀석과 꽤 오래 혀를 얽었다. 녀석이 손으로 날개가 있던 자리를 만지고 있다. 살이 맞닿아 미끄러질 때마다 점점 몸이 달아오른다.
“아읏, 하…….”
“내게 필요한 건 단지……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너야, 하스미.”
“네놈, 내 방이 아니라고 이런 짓을……! 흐으, 이 짐승 같은 녀석!”
“하하, 짐승 맞는데 뭐.”
능글맞게 웃으며 내 몸의 은밀한 곳을 어루만지는 녀석에게, 나는 결국 몸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너를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더욱 노력해야 한다. 이토록 나를 좋아해주는 너와 오랫동안 행복하게 지내기 위해서.
끝
뭔가 생각난 내용을 다 때려박다보니 길어졌다...5400자... 원래 리퀘 쓰면 2~3000자 내로 끊어 쓰려고 하는데 너무 욕심내서 이것저것 넣어버린듯
게다가 진지해짐... 죄송합니다... 이런 분위기를 바라셨던 건 아니었을텐데 틀에 박힌 전개를 벗어나려고 했더니 진지해져버림... 뭐때문이지 캐해석때문인가
말 배우는 늑대쿠로(꼬맹이)를 원하셨다고 하면...정말로 죄송할 따름입니다(도게자
조금 더 명확히 하자면, 케이토가 하고 있던 연구는 1. 자신의 몸 안에 여성의 생식기관 생성 / 2. 수명 연장 이었습니다.
이건 뻘소린데 늑x현 하면 진짜 개15지는 일본 회지가 있습니다. 만화인데 진짜 오지고 지리는 회지라 무의식중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온라인에 아직 재고가 남아 있다면 다른 회지랑 같이 사 보시는 것도 추천드림... 레알...
+리퀘박스에 문의가 들어온 김에 추가합니다... 저는 해당 존잘님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다만 제가 사시이레를 드린 적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