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 미연시 < 리퀘를 넣었던 사람입니다 추가로 드리고 싶은 상황이 있어 몇 마디를 더 적어봅니다 8888ㅅ8888) 가능하시다면 쿠로의 머리를 쓰다듬으니(부위를 바꿔주셔도 괜찮습니다) 앙스타처럼 HAPPY! 가 뜨는 상황도 같이 보고 싶습니다 다시 보내 죄송합니다···!
또 위기를 한 고비 넘긴 것 같다. 모퉁이를 돌아서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방금 그 녀석은 내가 당황한 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아니, 구면인 사람한테만 선택지가 뜨는 줄 알았는데 초면인 녀석에게도 선택지가 뜨면 어떡하란 말인가!
선택지라니, 무슨 게임 플레이하는 뚱딴지같은 소리냐 싶겠지만 사건인즉슨 이러하다. 월요일점심,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서 읽다가 잠깐 졸았던 일이 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책에 머리를 박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민망해져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다행히 내가 자는 걸 발견한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고 생각하며 안도하려는 찰나, 많이 피곤했나봐요, 하고 속삭이며 아오바가 등 뒤에서 불쑥 등장했다. 화들짝 놀라 돌아봤는데 정말로 이상한 일이 생겨버렸다.
- 뭐, 뭐야 이거?
- 그렇게 말하면 섭섭해요, 케이토 군. 도서부원이 도서실에 있는 게 이상한가요?
- 아니, 네놈 말고 이거…….
네놈 앞에 떠 있는 이 반투명한 직사각형 두 개 말이다, 라는 말이 목까지 올라오려다 말았다. 설마, 저 녀석에겐 보이지 않고 내게만 보이는 건가 하는 생각이 급히 들어서였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날 보고 있는 아오바를 두고, 그의 앞에 떠오른 직사각형 두 개를 살펴보았다. 각각의 칸 가운데에는 프레젠테이션 화면을 띄운 것마냥 선명한 글씨가 떠 있었다. ‘자는 거 봤나’, ‘어제 좀 무리를 한 것 같다’, 라……. 무엇을 선택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 거지. 누르는 건가.
- 엣? 제 옷에 무언가 묻었나요?
- 포, 포켓이 불룩 솟았길래 좀 신경이 쓰였다.
- 아, 이게 신경쓰였나요? 유리구슬이 들어 있어서 그래요. 오늘의 럭키 아이템이거든요.
안 사라지잖아! 당황해서 쓰여 있는 글씨 그대로 읊었더니 그제야 사라졌다.
- 자는 거, 봤나.
- 네, 죄송한데 봐 버렸어요. 깨울까 했는데 너무 피곤해 보여서 깨울 수가 없었지요.
- ……고맙군.
그 상황은 그렇게 어물쩡 넘겨버렸지만, 그 이후에도 종종 그런 식으로 사람 앞에 글자와 함께 흰 박스 두 개가 나타나곤 했다. 가령, 히메미야가 배고픔을 참다가 결국 도망갔다는 후시미의 말에는 ‘할 일은 다 하고 갔나’, ‘내일 오면 설교를 하겠다’, 라는 식으로 내가 할 만한 반응들이 나타났다. 마치 선택지가 뜨는 게임을 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무엇이 기준인지도 알 수 없었다. 화요일 아침 칸자키를 만났을 땐 선택지가 뜨더니, 수요일과 어제 아침에는 비슷한 상황에서 아무 것도 뜨지 않았다.
하지만 기억을 되짚어보면 일정한 방향성은 있는 것 같다. 첫째로 월요일부터 오늘, 금요일까지 오면서 선택지가 뜨는 빈도가 점점 늘어난다는 것. 월요일에는 아오바에게 선택지가 떴던 것 이외에는 집에 갈 즈음에 한 번 뜨고 말았는데, 어제는 기억나는 것만 해도 아홉 개 정도 있었던 것 같다.
두 번째는 이 선택지들이 그다지 기상천외한 선택지가 아니라는 것. 대부분의 선택지는 아오바나 후시미에게서 나타났던 선택지들처럼 평소 내가 할 만한 대답들이고, 어떤 것을 선택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한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게 게임이라면 대체 이 선택지들로 어떤 결과를 이끌어내려고 하는 건지 궁금할 정도로 평범한 문장들이었다. 단 한 사람만 제외한다면 말이지.
세 번째는 어떤 선택지를 선택하든 별 영향이 없어 보인다는 것. 물론 어떤 게임들은 선택지를 선택해도 패러미터의 변화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렇지 않더라도 상대 캐릭터의 반응을 보면 대충 신뢰도가 올랐는지, LUCK DOWN이 되었는지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돌이켜보면 딱히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선택지가 뜬다는 사실을 빼면 일상은 잔잔한 수면처럼 놀랍도록 평온하다.
……그런데 마지막이 문제다. 앞에서 말했던 것들 모두가 먹혀들지 않는 예외가 딱 한 놈 있다. 월요일부터 오늘까지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선택지를 띄우는 녀석. 게다가 그 선택지의 내용도 범상치 않다. 평화로운 일상에 가끔 자극이 있다면 그 녀석에게서 뜨는 선택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스미 나리. 여기 있었네?”
“아, 키류. 날 찾고 있었나?”
마침 당사자가 나타나다니, 타이밍 한번 죽여주는군.
“뭐,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멍하니 서서 뭐하고 있었어??”
“그냥…….”
또 선택지가 뜬다. ‘잠시 현기증이 좀 나서’, ‘할 일을 잊었다’, ‘네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세 가지다. 그래, 꼭 이런 식이다. 내가 하지 않을 대답만, 심지어 양자택일인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세 가지가 뜨는 것이다! 나는 현기증도 나지 않고 할 일을 잊어버린 것도 아닌데다가 키류를 생각한 건…… 아니라고 할 수는 없군. 하지만 그렇다고 세 번째 선택지를 고르면 이상한 놈이 되어버리지 않겠는가! 약골이란 소릴 들을지언정 멍청한 대답은 하고 싶지 않으니까, 첫 번째 선택지를 고를 것이다.
“잠시 현기증이 좀 나서…….”
“괜찮아?”
그의 큰 손이 이마를 덮는다. 그렇게 걱정스런 시선으로 보지 말라고, 차라리 약골이라고 놀리란 말이다! 열은 없네, 라면서 손을 뗀 그가 씩 웃었다.
“양호실까지 업어줄까?”
“아니, 됐어. 그럴 정도는 아니거니와 난 지금 바쁘…… 우왓!?”
녀석을 두고 가던 길을 가려다가 몸이 휘청했다. 다행히 녀석의 몸을 붙잡아서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아니야, 잠깐, 이건 현기증 때문에 그런 게 아니고 단순히 발이 꼬인 것일 뿐! 하지만 녀석에겐 전혀 설득력 없게 들리겠지. 아니나 다를까 녀석은 안쓰러워하는 표정으로, 뺨이 약간 상기된 채 나를 보고 있다. 어째서 부끄러워하는 거냐, 네놈.
“나, 나리. 손 좀…….”
“미, 미안하다.”
아차, 가슴에 손을 대고 있었군. 얼굴이 화끈거린다. 손을 떼자마자 분홍색의 ‘Happy☆’ 라는 글자가 떴다. 아침에 녀석의 머리에 붙어 있는 먼지를 떼어줬더니 똑같은 것이 떴기에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런 것도 오로지 키류에게서만 뜬다. 그것도 오늘 아침부터 말이지. 대체 왜 이 녀석에게만 그런 게 나타날까 생각하고 있는데 그가 등을 내밀었다. 업히지 않으면 공주님안기로 안고 가겠다는 협박에 못 이겨 결국 그의 등에 업혔다.
업혀 가면서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왜 내게 이런 현실 같지 않은 일이 생기게 되었는가. 그리고 어째서 키류 녀석만 유독 더 집요하게 선택지가 뜨는가, 마치 연애 게임의 공략 대상처럼. 그리고 녀석은 왜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인가. 물론 나답지 않은 반응을 보고 녀석도 당황해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오로지 그것 때문이라기엔 좀 미묘한 느낌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양호실에 도착했다. 사가미 선생님은 또 자리를 비웠군. 침대에 나를 눕힌 그가 유리문으로 된 약장을 이리저리 살폈다.
“어디보자, 뭘 먹어야 하나?”
“……섣불리 아무거나 가져오지 마라.”
나도 내가 뭘 먹어야할지 모르니 말이지. 왜냐면 난 아픈 게 아니니까! 녀석은 약을 찾는 것을 멈추고 내 곁에 다가와 앉았다. 뭐, 뭐냐 이 어색한 분위기. 그렇게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지 말라니까?
“하스미, 요즘 밥은 제대로 먹고 있나?”
“먹고 있다.”
“오늘 점심엔 뭘 먹었는데?”
“…….”
윽, 곧장 거짓말을 들킬 질문을 던질 줄은 몰랐는데. 의외로 예리하군. 녀석이 다시 한 번 내 이마를 짚는다. 열 안 난대도. 머리를 정리해주는 손길이 자상해 나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녀석이 밥도 제대로 먹고 잠도 푹 자라는 잔소리를 했다. 흥, 내가 키류에게 설교를 듣게 될 줄이야. 녀석이 딱하다는 표정으로 내 가슴을 토닥인다. 뭐, 뭐야, 이거. 네놈 동생 다루듯 나를 다루고 있는 거냐?
“키류…….”
“응?”
내 입 밖으로 나간 목소리지만 왠지 묘한 어조가 되었다. 아니, 이렇게 아련하게 부르려는 게 아니었다고. 괜히 여기서 시간 허비하지 말고 교실로 돌아가라는 말을 하려고 했을 뿐인데. 이런 내 속을 알 리가 없는 빌어먹을 선택지가 또 떴다. ‘가지 마’, ‘잠들 때까지 옆에 있어줘’, ‘가까이 와’…… 아니! 여기서 도망칠 수만 있다면 도망치고 싶은 선택지들뿐인데! 이딴 말을 내가 할 리가 없잖아! 이게 누군가가 만든 게임이라면 어째서 나의 캐릭터를 이따위로 엉망진창으로 해석한 거지? 현실이라면 누가 어째서 내게 이런 참혹한 시련을 내린 것인가? 눈을 감았다. 이 따위 선택지는 선택하지 않겠다는 나의 의지를 보여주지.
“……!”
하지만 곧 입술에 닿았다 떨어지는 부드러운 것 때문에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시야에 들어온 것은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진 키류였다. 몸을 벌떡 일으켰다.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네놈, 지금 무슨 짓을……! 놈은 손등으로 입을 가린 채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벽에 붙은 시력검사표만 쳐다보고 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입만 뻐끔거리던 나는, 녀석의 앞에 떠 있던 세 개의 선택지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를 부르려는 찰나 그가 입을 열었다.
“미, 미안.”
그것이 방금 전의 돌발행동에 대한 사과인 줄 알았던 나는 이어지는 그의 말을 듣고 사고회로가 멈춰버리고 말았다.
“방금 선택지…… 좀 이상했지? 내가 너무 큰 욕심을 부려서……”
끝
맘에 들게 널 다시 조.립.할.거.야~!! (작업브금 중 하나였음)
짧게 쓸랬는데 전력 쓰는 만큼 써버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소재는 재밌는데... 제가 잘 못살려서 죄송합니다...흑흑...이런 글을 바라지 않으셨을텐데....
리퀘 소화가 늦어질 것 같습니다 7월 9월 원고를 슬슬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ㅜㅜ
리퀘박스로 리퀘 말고 질문이나 감상도 받고 있어요~! 방명록이나 댓글로 남기기 부끄러우시면 리퀘박스로~!